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자)는 사도행전 강해를 통해 초대교회가 무너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구성원들의 뛰어난 도덕성이 아니라, 성령의 개입과 십자가·부활 사건이 초래한 세계관의 근본적 재편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많은 현대인이 ‘초대교회’라는 단어에서 갈등 없는 평화와 온정만이 가득한 낭만적인 풍경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증언하는 초기 공동체의 실상은 단순히 아름다운 실내 정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안에는 인간의 노골적인 욕망과 분열의 위기, 그리고 예기치 못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장재형 목사는 초대교회형 공동체를 ‘좋은 사람들의 사교 모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존재로 빚어내는 ‘거대한 작업장’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제시하는 교회 성장 전략은 눈에 보이는 기술적 확장이 아니다. 대신 케리그마(Kerygma, 말씀 선포)를 통해 공동체의 중심을 정렬하고, 케노시스(Kenosis, 비움)로 권위의 문법을 바꾸며, 코이노니아(Koinonia, 교제)를 통해 삶의 리듬을 재구축하는 장기적인 형성 과정에 집중한다.
재특히 장재형 목사는 사도행전 2장 23절에 나타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그는 이 구절이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이라는 두 가지 축을 동시에 붙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인간이 죄의 무게를 회피하거나 냉혹한 운명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인내가 인간의 비극을 복음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장 목사에 따르면, 이러한 신학적 토대 위에서 공동체는 자기변명을 내려놓고 진정한 회개와 믿음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심오한 신학적 담론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장 목사는 예술적 감각을 빌려 십자가와 부활을 설명한다. 그는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명화 <엠마오의 만찬>을 예로 들며,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는 제자들의 경악과 반응이 곧 공동체의 본질적 모습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십자가는 박제된 교리가 아니라 인간 폭력의 실재이며, 부활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이다. 이 틀 안에서 교회는 ‘더 크게, 더 빠르게’라는 시장의 논리를 버리고 ‘더 깊게, 더 진실하게’라는 본질적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공동체의 첫 번째 호흡인 ‘케리그마’는 단순한 강연이 아니라 존재를 뒤흔드는 사건의 선포다.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선포가 공적 영역에서 울려 퍼질 때, 신앙은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넘어 삶의 구조 전체를 재편하는 원동력이 된다. 여기서 파생되는 언어는 단순한 단어 선택이 아니라, 고통을 다루는 방식과 약자를 대하는 감수성, 시간을 사용하는 윤리로 번역되어 공동체의 공기를 형성한다.
이어지는 ‘케노시스’는 성장이 권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다. 장 목사는 조직이 커질수록 효율성을 추구하다 사람을 도구화하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예수의 자기 비움을 본받아 영향력이 커질수록 낮은 곳으로 임하며, 성취의 공을 공동체로 돌리는 절제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비움의 훈련이 전제되지 않은 성장은 공동체의 내적인 균열을 가속화할 뿐이다.
또한 ‘코이노니아’는 이러한 신앙적 가치들이 일상의 생활 양식으로 정착되는 지점이다. 장 목사는 코이노니아를 단순한 친목 도모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것은 서로의 필요를 민감하게 읽어내고, 갈등 속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발휘하며, 회복을 위해 인내하는 ‘공동체적 계약’과 같다. 특히 초대교회의 ‘떡을 떼는 행위’는 내 생존이 타인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선언이자, 사회적 책임의 시작점으로 기능한다.
디지털 시대의 고립이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장 목사는 ‘주중성(Weekday-ness)’과 ‘생활성’의 회복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온라인의 편리함이 줄 수 없는 ‘몸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식사하고 울고 기도하며 삶의 단위를 복음 아래 두는 ‘집에서의 떡떼임’이 회복될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대안적 공동체로 거듭난다.
결국 장재형 목사가 역설하는 초대교회형 공동체는 과거의 형식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매일 리모델링되는 유동적인 거처다. 그는 교회가 세상의 피로를 흡수하는 스펀지를 넘어, 그 피로를 소망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발화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성장이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깊은 사랑이며,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맑은 증언이라는 그의 통찰은 현대 교회가 나아가야 할 성숙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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