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가 조명한 고린도전서 9장의 제자도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자)는 고린도전서 9장에 나타난 바울의 행보를 통해,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제자도의 본질과 자비량 선교의 깊은 이면을 분석했다.


현대 사회의 리더십이 흔히 ‘권한의 극대화’와 ‘영향력의 과시’로 평가받는 것과 달리, 2천 년 전 사도 바울이 제시한 영적 질서는 철저한 ‘자기 제한’에 기반하고 있었다. 장재형 목사는 바울의 논증이 단순히 지위를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 복음이 사람의 마음에 가닿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장애물을 자신의 삶으로 제거해 나가는 ‘거룩한 조정’의 과정임을 역설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던진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라는 질문은 기득권을 주장하기 위한 서언이 아니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을 ‘특권의 선언’이 아닌 ‘책임의 확인’으로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도라는 직분은 권리의 방패가 아니라 희생의 언어로 입증되는 짐이라는 뜻이다. 특히 바울이 정의한 자유는 현대인이 오해하기 쉬운 ‘방임적 자유’와 결을 달리한다. 장 목사의 해석에 따르면, 바울의 자유는 ‘복음을 위해 스스로를 제한할 수 있는 권능’이며, 자유의 정점이 자기 통제에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는 편의와 쾌락을 자유로 혼동하는 이 시대에 던지는 묵직한 경종이다.

바울이 사역자로서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먹고 마실 권리, 가정을 꾸릴 권리, 경제적 보상을 받을 권리—를 일일이 열거하면서도 결국 이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대목은 고린도전서 9장의 핵심이다. 장 목사는 이를 ‘금욕적 자기 과시’가 아닌 ‘사랑의 계산’이라고 명명했다. 복음이 은혜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 전달 과정조차 ‘값없는’ 형식을 취하려 했던 바울의 고뇌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 목사는 자비량 선교의 본질을 ‘궁핍의 미화’가 아닌 ‘신뢰의 구조 설계’로 끌어올린다. 물질이 복음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불씨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바울은 스스로 경제적 장벽을 낮춤으로써 복음의 길을 넓히는 영적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지도자의 청렴성은 단순한 도덕적 결벽증이 아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복음이 의심받지 않도록 삶의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회계의 투명성이나 권한의 분산 같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며, 영성이란 결국 감정의 고조가 아닌 일상의 구조를 바꾸는 힘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바울이 모든 이에게 종이 된 이유는 타인을 조종하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복음의 통로로 내어주기 위함이었다. 지도자가 권위를 내세울수록 공동체는 불안해지지만, 섬김으로 권위를 증명할 때 공동체는 비로소 안전함을 느낀다는 제자도의 원리가 여기서 도출된다.

또한, 장재형 목사는 바울의 유연한 선교 방식, 즉 ‘상황화’의 원칙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전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다가간 바울의 태도는 목적과 한계가 분명했다. 목적은 영혼 구원이며, 한계는 복음 본질의 보존이다. 장 목사는 현대 교회가 형식을 우상화하여 고립되거나, 반대로 소통을 위해 본질을 흐리는 양극단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도자는 유연성과 원칙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 긴장이 사라지는 순간 복음의 빛은 바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9장 후반부의 ‘경주’ 비유 역시 제자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앙은 단거리의 폭발적 열정보다 장거리의 완주를 목표로 하는 절제의 과정이다. 장 목사는 바울이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킨 행위를 몸을 적으로 간주한 금욕주의로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해, 더 멀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말의 온도, 생활 습관을 다스리는 ‘자유의 기술’로 보았다. 은혜는 무질서를 방종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삶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능력이기에 제자도는 필연적으로 구체적인 생활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논지다.

이러한 바울의 사역 철학은 카라바조의 명화 <성 바울의 회심>을 통해서도 시각적으로 환기된다. 화면 가득한 무력함과 땅에 쓰러진 바울의 모습은, 그가 유능함으로 사역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복음 앞에 철저히 부서짐으로써 부르심을 받았음을 상징한다. 장 목사는 사역자의 진정성이 ‘승리자의 포즈’가 아니라 ‘부르심에 항복한 몸’의 흔적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내려놓고, 빨리 달리기보다 끝까지 달리는 인내가 복음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 목사는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간다”는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결과가 즉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사역자가 지켜야 할 ‘약속의 신뢰’를 강조했다. 소망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현실의 고난을 통과하게 하는 힘이다. 성과가 사명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사명을 지탱하기에, 사역자는 오늘의 흙만 보지 않고 내일의 열매를 바라보며 묵묵히 기도의 밭과 섬김의 밭을 갈아야 한다.

결국 고린도전서 9장이 던지는 최종적인 질문은 “복음을 위해 당신의 삶을 어디까지 조정할 수 있는가”로 수렴된다. 장재형 목사가 전하는 제자도는 이상적인 신앙인의 이미지를 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면서도 사랑의 질서에 순응하며 멈추지 않는 꾸준함이다.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조정하고 낮추는 그 한 사람을 통해, 복음은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생명력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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