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는 숫자로 가치를 증명하고 효율성으로 성공을 가늠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늘의 논리는 이와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자)는 최근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세 가지 비유(잃어버린 양, 드라크마, 탕자의 비유)를 통해 인간의 타산적 계산법을 뒤흔드는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진정한 회개의 의미를 심도 있게 고찰했다.
장재형 목사는 목장과 집 안, 그리고 가정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 비유들이 결국 ‘잃어버린 존재를 향해 기꺼이 움직이는 마음’이라는 하나의 초점으로 수렴된다고 분석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단순히 감성적인 언어로 치부하기보다, “잃어버림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라고 정의하며, 이것이 곧 신앙의 본질적 동력임을 강조했다.
‘아흔아홉’의 안정보다 ‘하나’의 회복을 택하는 파격
비유의 시작점은 세리와 죄인을 영접하는 예수를 향한 바리새인들의 냉소적인 시선이다. “왜 저 사람은 죄인과 함께 먹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장 목사는 이를 ‘사랑의 질서를 낯설어하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진단했다. 인간은 타락 이후 크고 많은 것에 가치를 두는 쪽으로 진화했지만, 하나님은 ‘문제없는 99’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잃어버린 1’을 위해 길을 나서신다는 것이다.
첫 번째 비유인 ‘잃어버린 양’에서 목자가 아흔아홉을 들에 두고 하나를 찾아 헤매는 행위는 경제적 관점에서는 불합리하다. 그러나 장 목사는 여기서 결정적인 키워드를 ‘효율’이 아닌 ‘끝까지’로 꼽았다. 하늘의 기쁨은 규모가 아니라 회복에서 발생하며, 사랑이란 결국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이어지는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는 더욱 노골적인 비합리성을 보여준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동전 하나를 찾았다고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는 여인의 모습은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과장된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장 목사는 바로 이 ‘과장’이야말로 복음의 핵심 문법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사랑의 진폭은 인간의 타산을 뚫고 넘어오며,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순간의 기쁨은 소모된 모든 시간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폭발적이라는 의미다.
회개는 공포가 아닌 ‘돌아갈 집’이 있다는 확신에서 시작된다
장재형 목사는 세 비유의 절정인 ‘탕자의 비유’를 통해 회개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했다. 흔히 회개를 정죄에 대한 공포나 자책으로 이해하지만, 장재형 목사는 탕자가 돌이킬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돌아갈 집’과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약의 회개, 즉 ‘메타노이아(metanoia)’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삶의 방향 자체를 전면 수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가 나를 환대할 것이라는 믿음 위에서만 가능한 결단입니다.”
특히 그는 본문 속 “아직도 거리가 먼데”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문턱을 넘기도 전에 이미 달려가 목을 안는다. 이는 용서의 형식을 넘어선 ‘환대’의 극치다. 용서가 과거의 기록을 지우는 소극적 행위라면, 환대는 끊어졌던 관계의 지위를 완전히 복원하는 적극적 행위라는 것이다. 장 목사는 이를 ‘조건 없는 사랑’이자 ‘잃어버림을 끝내지 않으려는 하나님의 결단’으로 규정했다.
명화 속에 투영된 사랑의 질감과 ‘비틀린 발’의 신학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신학적 통찰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렘브런트의 ‘탕자의 귀환’을 언급했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된 이 걸작은 아버지가 아들을 감싸 안는 두 손을 통해 사랑의 양가성을 보여준다. 한 손은 엄격한 권위를, 다른 한 손은 부드러운 자비를 상징하며 아들의 비참함을 넉넉함으로 덮는다.
그는 특히 탕자의 ‘비틀린 발’에 담긴 디테일을 강조했다. 상처 입고 너덜너덜해진 채 미화되지 않은 그 발이 아버지의 품에 닿는 순간, 인간의 모든 실패는 사랑의 자리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장 목사는 “돌아온 자를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 누가복음 15장이 말하는 사랑의 실체”라고 덧붙였다.
내 안의 ‘맏아들’과 마주하기: 공로의 언어를 넘어 은혜의 언어로
이야기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맏아들의 분노는 오늘날 종교인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경종이다. 맏아들은 성실했고 명을 어기지 않았지만, 돌아온 동생을 환대하는 아버지를 보며 격분한다. 장 목사는 이 분노를 단순한 질투가 아닌 ‘자기의(自己義)’의 발현으로 보았다.
그는 “복음은 공로의 세계를 무시하지 않지만, 결코 공로를 구원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맏아들이 분노한 이유는 아버지가 불의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너무나 은혜롭기 때문이다. ‘내 몫’에만 매몰된 맏아들은 아버지 집의 풍성함 속에 살면서도 스스로를 빈곤하게 만들었다. 장 목사는 이 비유가 타인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도사린 공로 의식을 성찰하게 하는 거울임을 역설했다.
새해의 우선순위, ‘성취’가 아닌 ‘사랑을 알아가는 것’
결론적으로 장재형 목사는 현대 교회의 리더십과 성도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로 ‘하나님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시했다. 그는 교회가 잃어버린 자를 향해 길을 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그 길은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식탁을 나누는 용기와 일상을 정돈하는 성실함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한 해의 삶을 설계하며 ‘성공’보다 ‘사랑’을 우선순위에 두라는 그의 권면은 단순한 종교적 수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갈수록 우리의 관심은 숫자가 아닌 생명으로 옮겨가고, 수군거림은 찬송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잃었다가 얻었다”는 단 한 문장이 사랑의 모든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듯,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세상의 지혜를 이기는 역설이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재현되기를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누가복음 15장은 그렇게, 사랑을 머리로 이해하는 장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며 잃어버린 하나를 향해 직접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초대장으로 마무리된다.
답글 남기기